베라진 블로그 verajinblog
편입 공부법으로
41 분 분량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을 낭비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간은 대개 '안 한 시간'이 아니라 게으름이 아닌 '편한 공부'의 얼굴을 한 자리에서 샌다. 편입에 떨어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공부를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직관 이미지
걱정 더미의 길과 체크리스트의 길이 갈리는 장면으로, 편입 실패가 시작되는 시간 낭비 지점을 찾아 나섭니다.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을 낭비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간은 대개 '안 한 시간'이 아니라 게으름이 아닌 '편한 공부'의 얼굴을 한 자리에서 샌다. 편입에 떨어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공부를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법 문제를 계속 맞히는 사람이 '오늘도 많이 했다'며 세 시간을 문법에 쓰는 동안, 정작 점수를 깎아먹는 장문 독해는 손도 못 댄다. 익숙한 문제를 다시 푸는 건 마음은 편하지만 점수는 그대로다.

오늘은 준비생들이 가장 자주 시간을 흘려보내는 다섯 곳을 하나씩 짚어 보려 한다. 읽다가 내 이야기 같은 대목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손보면 된다.

앉아 있는 시간과 오르는 시간은 다르다

편입은 '양'으로만 밀어붙이기 어려운 시험이다. 같은 열 시간이라도 어떤 사람은 자기 약점을 정확히 겨냥해 채우고, 어떤 사람은 이미 잘하는 부분을 반복하며 안도감만 얻는다. 뒤쪽이 위험하다. 익숙한 문제를 다시 푸는 건 마음은 편하지만 점수는 그대로다. 예를 들어 문법 문제를 계속 맞히는 사람이 '오늘도 많이 했다'며 세 시간을 문법에 쓰는 동안, 정작 점수를 깎아먹는 장문 독해는 손도 못 대는 식이다. 낭비는 게으름이 아니라 대개 '편한 공부'에서 나온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다섯 지점은 모두 '열심히 하는데도 안 오르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걸려 넘어지는 곳이다.

낭비 지점 하나: 모집요강을 안 읽고 감으로 준비한다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1번 본문 이미지
학생·장애물·다음 걸음의 간결한 도해로, 모집요강을 안 읽고 감으로 준비하는 첫 번째 낭비 지점을 표현했습니다.

가장 흔하고, 가장 아까운 낭비다. 편입은 학교마다 반영 과목, 과목별 배점, 지원 자격, 모집 인원 구조가 제각각이다. 그런데 상당수가 '영어랑 수학 하면 되겠지'라는 감으로 몇 달을 보내다가, 원서 접수 무렵에야 지원하려던 학교가 자기 전공 기준과 안 맞거나 반영 비중이 생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방향을 틀면 이미 쓴 시간의 상당 부분이 날아간다. 예컨대 영어만 반영하는 곳을 목표로 잡았는데 뒤늦게 수학 비중이 큰 학교로 바꾸면, 몇 달간의 영어 편중 공부가 전략적으로 흔들린다. 해결은 단순하다. 각 학교가 공개하는 공식 모집요강을 준비 초반에 직접 읽는 것이다. 학원 후기나 카페 글이 아니라 학교가 낸 문서를 봐야 한다. 반영 과목과 배점, 자격 요건, 지난해 모집 구조를 표로 정리해두면 이후 모든 공부의 우선순위가 선명해진다.

낭비 지점 둘: 기출을 풀기만 하고 진단하지 않는다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2번 본문 이미지
풀기만 한 기출 더미와 진단까지 마친 자료를 비교하는 장면으로, 기출을 풀기만 하고 진단하지 않는 낭비를 보여줍니다.

기출을 많이 푼다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왜 틀렸는지'를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채점하고 정답 확인하고 다음 회차로 넘어가면, 문제 수만 늘 뿐 약점은 그대로 남는다. 같은 유형에서 반복해서 틀리는데 그 사실을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제대로 하려면 틀린 문제를 네 갈래로 나눠 봐야 한다. 단어를 몰라서 틀렸는가, 구문을 못 끊어서 해석이 꼬였는가, 문장은 읽었는데 논리 흐름을 놓쳤는가, 다 읽고도 답 고르는 습관 때문에 함정에 걸렸는가. 이 네 가지는 처방이 완전히 다르다. 단어 문제면 어휘를, 구문 문제면 문장 구조 훈련을, 논리 문제면 문단 독해를, 답 고르기 문제면 선택지 비교 연습을 해야 한다. 진단 없이 '독해를 더 하자'로 뭉뚱그리면, 정작 필요한 처방은 계속 미뤄진다. 최근 기출 몇 회분만이라도 이 기준으로 오답을 분류해보면, 자기 점수가 어디서 새는지 눈에 보인다.

낭비 지점 셋: 단어장만 붙잡고 구문과 논리를 미룬다

영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착각이 '단어만 다 외우면 읽힌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휘는 기본이다. 하지만 편입 영어의 지문은 문장이 길고, 수식 구조가 겹치고, 삽입과 도치가 섞여 있다. 단어를 다 알아도 문장의 주어와 동사가 어디인지 못 잡으면 해석이 무너진다. 실제로 단어 시험은 잘 보는데 지문만 만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대개 구문 훈련이 비어 있는 경우다. 단어장은 눈에 보이는 진도가 있어 마음이 편하고, 구문·논리는 티가 잘 안 나서 자꾸 뒤로 밀린다. 그래서 낭비가 쌓인다. 해결은 균형이다. 단어를 외우되, 매일 조금씩이라도 긴 문장을 직접 끊어 읽고 주어·동사·수식 관계를 표시하는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짧은 지문 한 편이라도 '구조를 그려가며' 읽는 연습이 단어 암기보다 점수에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

낭비 지점 넷: 공부 시간을 기록하지 않아 착각이 쌓인다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3번 본문 이미지
안개 낀 물음표가 세 확인 지점으로 정리되는 그림으로, 공부 시간을 기록하지 않아 착각이 쌓이는 지점을 담았습니다.

'오늘 진짜 많이 했다'는 느낌은 종종 사실과 다르다. 카페에 여덟 시간 앉아 있었다고 여덟 시간을 공부한 게 아니다. 그 사이 휴대폰, 멍때림, 자료 찾기, 이동 시간을 빼면 실제 집중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그런데 기록이 없으니 스스로는 '충분히 했다'고 믿는다. 이 착각이 위험한 이유는, 노력의 총량을 과대평가하면서 결과가 안 나오면 '나는 머리가 안 되나 보다'로 잘못 결론짓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과목별로 실제 집중한 시간을 재서 남기는 것이다. 타이머를 켜고 딴짓하면 멈추는 방식이면 충분하다. 일주일만 정직하게 기록해보면, 자기가 어디에 시간을 쓰는지와 어디가 비어 있는지가 숫자로 드러난다.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자기 공부를 보게 되는 순간, 낭비가 눈에 띄고 조정이 시작된다.

낭비 지점 다섯: 학교를 늦게 정하고 상담을 미룬다

편입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디서 시간 낭비할까? 4번 본문 이미지
화면 불빛 아래 상담 준비 자료를 정리하는 장면으로, 학교 결정을 미루고 상담을 늦추는 마지막 낭비 지점을 표현했습니다.

목표 학교가 흐릿하면 공부 우선순위가 매주 흔들린다. 이번 주엔 A학교 스타일로, 다음 주엔 B학교 소문을 듣고 방향을 바꾸다 보면, 정작 어느 쪽에도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특히 반영 과목이 다른 학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 시간 손실이 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데나 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현재 자기 성적과 기출 진단 결과를 놓고, 현실적인 지원권을 몇 개로 좁히는 작업을 이르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이때 혼자 판단이 어렵다면 상담을 활용하되, 막연한 '가능성' 질문 대신 현재 기록—모의 점수, 오답 분류, 공부 시간—을 들고 가는 게 좋다. 근거가 있는 상담이라야 답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합격을 장담하는 상담은 경계하는 편이 낫다. 편입에 보장이란 없고, 있는 건 조건과 현재 위치에 맞춘 현실적인 조정뿐이다.

지금 바로 점검할 수 있는 리스트

말만으로는 안 바뀌니,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둔다. 하나씩 표시해보면 자기 낭비 지점이 보인다.

  • 지원하려는 학교 두세 곳의 공식 모집요강을 직접 열어 반영 과목과 배점을 확인했는가.
  • 최근 기출 한 회분의 오답을 단어·구문·논리·답 고르기로 나눠봤는가.
  • 오늘 영어 공부에 단어 암기 말고 긴 문장 구조 분석이 포함됐는가.
  • 오늘 과목별 실제 집중 시간을 숫자로 기록했는가.
  • 현재 성적 기준으로 현실적인 지원권 학교를 몇 개로 좁혀봤는가.

다섯 개 중 표시 못 한 항목이, 지금 당신의 시간이 새고 있는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혼자 판단이 안 설 때

위의 다섯 지점을 스스로 점검하다 보면, 어디가 문제인지는 대충 보여도 '그래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다시 짜야 하나'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록을 객관적으로 읽어줄 시선이 필요해서다. 현재 성적, 오답 분류, 공부 시간 기록을 정리해두었다면, 그 자료를 놓고 방향을 함께 잡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편입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새는 시간을 막는 싸움에 가깝다. 혼자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아래로 편하게 물어보면 된다.

카카오채널 상담: http://pf.kakao.com/_xmTxaPX

준비 기간에 시간이 새어 나가는 지점

편입 준비생이 가장 많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정보 수집'이라는 이름의 미루기다. 커뮤니티 글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읽고, 합격 후기를 스크랩하고, 대학별 편입 요강을 반복해서 비교하지만 정작 단어 하나, 문법 한 챕터를 끝내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정보는 방향을 정할 때 한 번 모으면 충분하다. 지원할 대학군과 전형 유형을 정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요강 확인을 주 1회로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은 실제 학습에 넣어야 한다.

두 번째로 흔한 낭비는 '완벽한 교재와 계획'을 찾는 데 쓰는 시간이다. 어떤 단어장이 좋은지, 어떤 강의가 더 낫다는지 며칠씩 비교하다 보면 정작 공부는 시작도 못 한다. 교재는 한 권을 끝까지 회독하는 사람이 이기고, 계획은 지킬 수 있는 분량으로 짜야 유지된다. 매일 아침 30분을 계획 수정에 쓰는 대신, 그 시간에 어제 틀린 문제를 다시 푸는 편이 점수를 올린다.

세 번째는 '공부한 티'만 내는 시간이다. 노트를 예쁘게 정리하고, 형광펜으로 색을 나누고, 인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흘려듣는 방식은 손과 눈은 바쁘지만 머리는 쉬고 있다. 편입 영어는 결국 지문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해석하느냐로 갈린다. 예쁜 흔적이 아니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 늘어야 실력이다.

오늘부터 바꿀 수 있는 학습 습관

먼저 하루를 '입력'과 '출력'으로 나눠 보자. 단어를 외우고 강의를 듣는 것이 입력이라면, 문제를 풀고 지문을 스스로 해석하는 것이 출력이다. 준비가 헛도는 사람은 입력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출력을 뒤로 미룬다. 이 비율을 최소한 절반씩으로 맞추는 것만으로도 체감 실력이 달라진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해볼 수 있다. 첫째, 매일 기출 또는 실전 문제 한 세트를 정해진 시간 안에 푼다. 시간을 재지 않으면 실전에서 무너진다. 둘째, 틀린 문제는 해설을 읽고 넘어가지 말고 다음 날 같은 문제를 다시 풀어, 정답의 근거를 스스로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셋째, 단어는 새 단어를 늘리기보다 이미 본 단어를 반복해 떠올리는 데 초점을 둔다. 새 단어를 많이 훑는 것보다 어제 본 단어를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드는 편이 시험장에서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주 1회는 그 주에 무엇을 실제로 끝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갖자. 계획 대비 진도가 아니라 '내가 새로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준으로 적는다. 해석이 되기 시작한 문장 유형, 더 이상 틀리지 않게 된 문법 포인트를 기록하면 막연한 불안 대신 눈에 보이는 성장이 남는다. 편입은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앉은 시간을 결과로 바꾸는 사람이 붙는다.

나도 정보 수집이라는 이름으로 몇 주를 태웠다

돌이켜 보면 준비 초반의 나는 가장 열심히 딴짓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침에 책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공부가 아니라 검색이었다. 어느 대학 편입이 붙을 만한지, 어떤 단어장이 요즘 평이 좋은지, 합격한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을 했는지를 찾아 읽으며 오전을 통째로 흘려보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준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날 내가 새로 외운 단어는 하나도 없었고, 해석할 수 있게 된 문장도 없었다. 정보는 방향을 정할 때 한 번 모으면 충분한데, 나는 방향을 이미 정해 놓고도 계속 정보만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습관을 끊은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규칙 하나였다. 요강이나 후기 검색은 일요일 저녁 30분에만 하기로 정했다. 그 시간이 지나면 궁금해도 참고 문제집을 폈다. 처음엔 손이 근질거렸지만 며칠 지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정보를 찾는 대신 실력을 쌓는 데 시간을 쓰기 시작하면서, 막연하던 불안이 눈에 보이는 진도로 조금씩 바뀌었다.

'열심히'가 아니라 '무엇을'이 문제였다

나는 성실하지 않은 편이 아니었다. 매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고 강의도 빠짐없이 들었다. 그런데 시험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 실력이 제자리였다. 한참 뒤에야 이유를 알았다. 나는 '열심히'는 했지만 '무엇을' 하는지에는 무관심했다. 노트를 색깔별로 정리하고,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흘려듣고, 단어장을 몇 번이나 다시 첫 장부터 넘겼다. 손은 바빴지만 그중 어느 것도 내가 스스로 문장을 해석하는 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방식을 바꾼 뒤로는 하루를 '입력'과 '출력'으로 나눠 봤다. 강의를 듣고 단어를 외우는 게 입력이라면, 문제를 풀고 지문을 내 말로 해석하는 게 출력이었다. 예전의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입력에 쓰고 출력을 시험 직전으로 미뤘다. 그 비율을 절반씩으로 맞추자 처음으로 실력이 늘고 있다는 감각이 왔다. 틀린 문제를 다음 날 다시 풀어 정답의 근거를 스스로 말해 보는 것, 그 지루한 반복이 사실 가장 확실하게 점수를 올렸다.

슬럼프라고 부르며 쉬었던 날들

중반쯤 성적이 정체되자 나는 그 시기를 '슬럼프'라고 불렀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니 쉬는 게 정당해졌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하루를 통째로 비우고, 오늘은 마음을 다잡는 날이라며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 봤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졌지만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쉬어도 불안하고, 공부해도 불안한 상태가 계속됐다. 나중에야 그게 진짜 슬럼프가 아니라, 결과가 안 보이니까 미리 포기의 명분을 만들어 둔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그 시기를 빠져나온 방법은 단순했다. 슬럼프가 온 것 같으면 쉬지 말고 가장 쉬운 문제 다섯 개만 풀기로 했다. 완벽하게 하려 들지 않고 그냥 손을 움직였다. 다섯 개를 풀면 대개는 열 개, 스무 개로 이어졌고, 안 되면 딱 다섯 개만 하고 멈춰도 자책하지 않았다. 멈추더라도 완전히 놓지 않는 방식, 그게 감정에 하루를 통째로 내주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결국 앉은 시간을 결과로 바꾸는 사람

지금 준비하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대단한 비법이 아니다. 편입은 특별한 요령이 아니라 새는 시간을 막는 싸움에 가깝다는 것뿐이다. 정보 수집이라는 이름의 미루기, 열심히만 하고 무엇을 하는지 놓친 시간, 슬럼프라 부르며 쉰 날들. 내가 낭비한 자리들은 대부분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흘려보내는 지점이었다. 그걸 하나씩 막았을 뿐인데 남은 기간의 밀도가 달라졌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하루 중 실제로 손을 움직여 해석한 문장이 몇 개인지, 걱정에 쓴 시간과 문제에 쓴 시간 중 어느 쪽이 많았는지. 정직하게 일주일만 기록해 보면 어디가 새고 있는지가 숫자로 드러난다. 자기 기록을 정리해 두고도 남은 기간을 어떻게 다시 짜야 할지 막막하다면, 그 자료를 놓고 방향을 함께 잡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혼자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아래로 편하게 물어보면 된다.

완강 진도율로 하루를 위로하던 날들

돌아보면 나는 강의 진도율에 유난히 약했다. 하루를 마칠 때 인강 목록의 진행 막대가 조금이라도 더 채워져 있으면 그날은 성공한 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채운 진도가 시험 점수로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같이 준비하던 한 사람은 나보다 훨씬 빨리 강의를 다 들었다. 완강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급해졌지만, 정작 그 사람도 모의고사에서는 초반 강의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둘 다 재생 버튼을 누른 횟수를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만나도 멈추면 진도가 밀린다며 그냥 넘어갔다. 진도표는 깔끔했지만 막힌 자리는 그대로 남아,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의 불안도 같이 커졌다.

나 역시 진도가 빠른 사람을 보면 마음이 급해져서 이해가 덜 된 강의를 서둘러 넘기곤 했다. 그렇게 넘긴 강의는 며칠만 지나도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목록에는 다 들은 것으로 남아 있으니 다시 펼칠 이유가 없었다. 끝난 일로 분류된 그 강의들이 사실은 하나도 끝나지 않았다는 걸, 나는 모의고사 점수가 정체된 뒤에야 알았다. 빨리 도는 것과 남기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일이었다.

방식을 바꾼 건 진도율 화면을 아예 닫으면서부터였다. 강의를 하나 들으면 곧바로 그 내용으로 문제를 몇 개 풀어 보고, 풀리지 않으면 진도가 밀리더라도 그 강의를 다시 들었다. 처음엔 목록이 더디게 채워져 답답했지만, 백지에 오늘 배운 걸 스스로 요약해 보는 순간 비로소 뭐가 남았는지가 보였다. 다 들었다는 안도감 대신 하나라도 설명할 수 있다는 감각이 남기 시작하면서, 얇았던 성취가 조금씩 두꺼워졌다. 진도는 남에게 보여 줄 숫자였지만, 내게 필요한 건 시험장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문장 하나였다.

오답을 확인만 하고 덮어 두었던 것

한동안 나는 채점을 참 성실하게 했다. 틀린 문제의 해설을 꼼꼼히 읽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 문제를 정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뒤 비슷한 유형을 만나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또 걸렸다. 해설을 이해한 것과 스스로 다시 푸는 것이 다른 능력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함께 공부하던 한 사람은 오답노트를 정말 예쁘게 만들었다. 색을 나눠 정리하고 정성껏 옮겨 적어서, 나는 그 노트가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노트를 만드는 데 힘을 다 쓰고 정작 그걸 다시 펴서 문제를 푸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공부처럼 느껴져 거기서 멈춰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습관을 오래 못 버린 건, 그게 게으름이 아니라 성실함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점을 하고 해설에 밑줄을 긋는 동안 나는 분명히 바빴고, 그래서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믿었다. 실력이 안 느는 이유를 나는 자꾸 다른 데서 찾았다. 교재가 안 맞나, 강사가 안 맞나 하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틀린 문제를 한 번도 다시 풀지 않았으니, 그 문제는 여전히 내가 틀릴 수 있는 문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답을 대하는 방식을 아예 바꿨다. 틀린 문제는 채점한 그날 해설을 덮고 한 번, 다음 날 아침에 아무것도 보지 않고 또 한 번 풀었다. 정답의 근거를 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붙잡았다. 노트를 꾸미던 시간을 틀린 문제를 다시 푸는 시간으로 옮기자, 신기하게도 같은 함정에 두 번 빠지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반복이었지만, 내 점수를 가장 확실하게 올린 건 결국 그 반복이었다. 예쁜 노트를 만들 때의 뿌듯함은 그날 하루로 끝났지만, 다시 풀어 스스로 근거를 말해 본 문제는 시험장까지 나를 따라왔다. 화려한 정리 대신 남루한 반복을 택한 것이 그 기간의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잠을 줄여 버티려던 밤들

기간이 촉박해지자 나는 제일 먼저 잠을 깎았다. 새벽 두 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오늘은 정말 열심히 했다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다음 날 낮에 고스란히 돌아왔다. 오후 내내 머리가 멍해서 오전에 풀었던 문제를 오후에 다시 틀리는 일이 반복됐다. 늘린 밤이 낮을 갉아먹어 하루 전체로 보면 오히려 손해였던 것이다. 함께 준비하던 한 사람은 시험을 코앞에 두고 이틀 밤을 새워 벼락치기를 했다가, 정작 시험 당일 지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아는 문제까지 놓쳤다며 시험장을 나와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없는 시간을 만들려다 이미 쌓아 둔 것마저 흘려보낸 그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밤을 줄이는 걸 쉽게 놓지 못한 건, 늦게까지 켜 둔 불이 스스로에게 떳떳한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시까지 앉아 있었는지는 기억해도, 그 시간에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흐릿한 정신으로 앉아 버틴 세 시간이 맑은 정신의 한 시간보다 못하다는 걸, 나는 늘 다음 날 낮이 되어서야 몸으로 깨달았다. 밤에 벌었다고 믿은 시간은 이자까지 붙어 낮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자는 시간을 고정해 두고 그 안에서 하루를 짰다. 밤을 늘리는 대신 낮에 흩어지던 시간을 붙잡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컨디션이 무너져 며칠을 통째로 날리는 일이 사라지자, 앉아 있는 시간이 짧아졌는데도 결과는 오히려 나아졌다. 지금 준비하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늦게까지 앉아 있던 어젯밤 실제로 손을 움직여 해석한 문장이 몇 개였는지 정직하게 세어 보라는 것. 오래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채점해 주지 않는다. 채점되는 건 그 시간에 실제로 세워 올린 문장뿐이다. 편입은 밤을 늘린 사람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을 결과로 바꾼 사람이 붙는 시험이었다.

계획표만 예쁘게 짜던 일요일 밤들

나도 한동안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더 길었다.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 밤이면 두 시간씩 앉아 이번 주 계획표를 색깔별로 나눠 짰다. 월요일 문법, 화요일 독해, 칸을 다 채우고 나면 벌써 절반은 해낸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계획은 화요일이 오기도 전에 어긋났고, 나는 어긋난 계획을 다시 그리느라 또 시간을 보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이 공부의 준비가 아니라 공부의 대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보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풀어야 할 문제집을 펼치기도 전에 어느 강의가 더 좋은지, 어떤 교재가 합격자들 사이에서 유명한지부터 검색했다. 합격 후기를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면 나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옆자리에서 함께 준비하던 사람도 그랬다. 그 학생은 늘 새로운 공부법 영상을 확인하고 다녔는데, 정작 자기 문제집은 늘 앞쪽 몇 장만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서 뜨끔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에 속고 있었다. 계획표를 채우고 후기를 확인하는 동안 손과 눈은 분명히 분주했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한 한 주가 끝나도 내가 실제로 다시 푼 문제는 몇 개 되지 않았다. 편입이라는 상황에서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둔 시간 낭비는 놀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열심히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십 분으로 줄이고, 대신 실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오늘 실제로 푼 문제 수와 다시 푼 오답 수를 딱 한 줄로 적어 두었다. 그러자 예쁜 계획표 대신 초라하지만 정직한 기록이 쌓였다. 주말이면 그 기록을 펼쳐 놓고 하나만 점검했다. 지난 한 주 동안 계획을 세운 시간과 실제로 손을 움직인 시간 중 어느 쪽이 길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부끄러웠지만, 그 부끄러움이 결국 나를 책상으로 돌려보냈다. 나를 바꾼 건 그럴듯한 계획표가 아니라 오늘 하루 실제로 푼 문제를 한 줄로 남긴 그 남루한 기록이었다.

혼자 방향이 서지 않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여기서 따지는 건 잘잘못이 아니라 지금 어디서 시간이 새는지 그 상황뿐이니,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물어보고 싶을 때만 편하게 아래로: https://blog.verajin.com/go/kakao?src=personal_blog&p=pkg_2792bee7534c&pos=1